[디아스포라 시선] 사과배
2007년, UC 샌디에이고를 졸업하고 필자가 향한 곳은 중국의 연변이었다. 당시 경제적으로 거침없는 성장세를 이어가던 중국의 역동성도 흥미로웠지만,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길림성의 연변 자치구와 조선족을 위해 설립된 중국 최초의 중외합작대학인 연변과학기술대학교(YUST)는 다른 차원의 끌림을 주었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한인타운이 미국 LA에 있는 줄 알았는데 연길에 도착하는 순간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깨달았다. 연변 조선족 자치구의 면적은 대한민국의 절반 정도로 넓었고 어느 곳이든 중국어와 한글이 병행 표기되어 있었다. 시장과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조선족들은 구수한 연변식 한국어를 구사하며 한국 드라마는 물론 춘향전 같은 전통극과 가무도 즐겼다. LA 한인타운과는 비교가 안 되는 규모의 또 다른 ‘코리아’가 중국 외곽에 있었다. 연변과기대에서 한 학기 동안 일하며 또래 중국 동포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는데, 그중 일수라는 친구와 특히 더 돈독해졌다. 일수는 어느 날 연변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자신의 고향 왕청시로 나를 초대했고, 나는 버스를 타고 왕청으로 향했는데,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40년 전 한국 어느 골목 거리를 통과하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수 집에 도착하니 일수 할머니께서 맛있는 옥수수죽을 만들어주셨다. 알고 보니 일수 부모님은 수년째 한국에서 노동일을 하며 일수 형제의 생활비를 보내고 있었다. 아마 그때였던 것 같다. 일수는 나보고 ‘사과배’라는 과일에 대해 아는지 물었다. 사과와 배의 유전자를 변형시켜 만든 사과배는 연변 지역에서 다량으로 재배되었다. 일수는 중국의 조선족들은 스스로를 ‘사과배’라고 부른다고 했다. 사과도 배도 아닌, 즉 중국인도, 조선인도 아닌 애매한 정체성에 대한 서러움과 애환의 표현이었으리라. 재미 한인인 나는 중국의 조선족 친구들 역시 정체성 문제로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자신의 조국을 떠나 해외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디아스포라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불가피하게 자아와 소속감을 찾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다고. 과연 조선족과 재미 한인, 아니, 모든 디아스포라는 과연 언제 온전한 ‘사과’ 혹은 ‘배’가 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생존을 위해 혹은 주류에 동화되기 위해 사회 규범과 가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며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나 일부는 자신의 소수성, 경계성, 이방인성을 능동적으로 수용하고 지배적인 문화와 체제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멈추지 않는다. 여기서 비판적 사유란 꼭 어떤 사회운동이나 정치 참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철학적이기도 하다. 12세기 프랑스 신학자였던 생빅토르의 ‘위그의 명언’을 되새겨보자. “자신의 고향을 달콤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직 미숙한 초보자이다. 좀 더 성숙한 사람은 모든 곳을 고향처럼 느끼는 코스모폴리탄이며, 궁극의 성숙한 모습은 모든 곳을 타향이라고 생각하는 이방인이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편안함과 소속감을 느끼는 세계 시민보다 오히려 자기 부정을 통해 이방인을 자처하는 이가 더 성숙한 존재라는 옛 신학자의 글에는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이는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주류와 지배계급에 속하고 싶은 욕망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동서양의 종교와 철학이 ‘자기 부정’과 ‘초월성’을 가장 높은 가르침으로 삼는 것 역시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약육강식과 경쟁, 다툼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미래를 원한다면, 힘들지라도 시도해봐야 하지 않을까. 중심보다 변두리를 선택하고, 의식적으로 디아스포라가 되어보는 것, 그래서 ‘사과’나 ‘배’가 아닌, 그것을 초월하는 ‘사과배’ 그 자체가 궁극의 성숙이고 온전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전후석 / ‘헤로니모’·‘초선’ 감독디아스포라 시선 사과배 중외합작대학인 연변과학기술대학교 연변식 한국어 연변 조선족